글리코·모리나가 사건 정리|독이 든 과자와 괴인 21면상, 130만 명 투입에도 못 잡은 범인

1984년 3월 18일 밤,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한 주택에 복면을 쓴 남성들이 침입했습니다.

집의 주인은 일본의 유명 제과회사 에자키 글리코의 사장 에자키 가쓰히사였습니다.

범인들은 가족을 제압하고 에자키 사장을 납치한 뒤 현금 10억 엔과 금괴 100kg을 요구했습니다.

거액의 몸값을 노린 단순 납치사건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납치된 에자키 사장은 약 65시간 만에 감금 장소에서 스스로 탈출했습니다.

범인들은 돈도 받지 못했고 인질도 놓쳤습니다.

보통이라면 범행이 여기서 끝났을 법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범인들은 이후 글리코를 상대로 협박과 방화를 이어갔고, 모리나가제과와 하우스식품 등 다른 식품회사들까지 차례로 위협했습니다.

경찰과 언론에는 자신들을 **‘괴인 21면상’**이라고 부르는 편지를 보내며 공개적으로 수사기관을 조롱했습니다.

급기야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는 청산가리가 들어간 과자까지 발견됐습니다.

범인의 얼굴로 의심되는 인물도 목격됐습니다.

방범카메라 영상도 남았습니다.

수많은 협박장과 범행 차량, 사용한 기기의 종류까지 추적됐습니다.

경찰이 수사한 대상은 약 12만 5천 명, 수사에 투입된 경찰은 연인원 약 13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도 범인은 단 한 명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 2월, 마지막 사건의 공소시효까지 끝났습니다.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단서가 거의 없었던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단서가 있었는데도 끝내 범인의 이름을 밝혀내지 못한 사건으로 일본 범죄사에 남았습니다.

글리코·모리나가 사건 정리|독이 든 과자와 괴인 21면상, 130만 명 투입에도 못 잡은 범인

시작은 글리코 사장 납치사건이었다

1984년 3월 18일 밤, 복면을 쓴 남성들이 에자키 가쓰히사 사장의 자택에 침입했습니다.

범인들은 가족을 제압한 뒤 에자키 사장을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이들은 사장 가족에게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현금 10억 엔과 금괴 100kg이었습니다.

하지만 범인들의 계획은 며칠 만에 틀어졌습니다.

에자키 사장이 감금돼 있던 오사카부 이바라키시의 수방창고에서 스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납치 약 65시간 만이었습니다.

에자키 사장은 살아 돌아왔고 범인들은 요구했던 몸값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범인들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질을 놓치고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사장 납치에 실패한 뒤 범인들은 글리코를 계속 공격했습니다.

글리코 관련 시설에 불을 지르고 회사에 돈을 요구하는 협박을 이어갔습니다.

언론사와 경찰에도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괴인 21면상.

이후 이 명칭은 범인 또는 범인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됐습니다.

중요한 점은 ‘괴인 21면상’이 특정 한 사람의 신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납치사건부터 여러 명이 함께 행동한 정황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복수의 인물이 범행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놓고 수사했습니다.

그러나 범죄집단이 실제 몇 명이었는지, 누가 중심인물이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왜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라고 부를까

사건은 에자키 글리코에서 시작됐지만 범인들의 표적은 한 회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후 마루다이식품, 모리나가제과, 하우스식품 등 다른 식품회사들도 협박 대상이 됐습니다.

범인들은 회사들에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현금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돈을 전달하는 방법도 복잡했습니다.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로 이동하게 한 뒤 다시 다른 장소로 향하도록 지시하거나, 이동 중 추가 지시를 내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경찰은 돈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위장해 범인을 잡으려 했지만 범인들은 여러 차례 수사망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가운데 글리코와 모리나가를 상대로 한 범행이 특히 크게 알려지면서 일련의 사건은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기업 협박이 ‘독이 든 과자’ 사건으로 바뀌다

사건이 일본 사회 전체의 공포로 번진 결정적인 계기는 독극물 과자였습니다.

1984년 가을, 오사카와 효고·교토 등 여러 지역의 매장에서 청산가리가 들어간 모리나가 제품이 발견됐습니다.

이제 위험은 기업 관계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평범하게 과자를 고르는 일반 소비자와 어린이까지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경찰은 이를 살인미수 사건으로 수사했습니다.

식품회사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유통업체들은 제품을 철수하거나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매장에서 파는 과자조차 안심하고 먹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실제로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숨진 사람이 있었을까

이 사건을 처음 접하면 가장 먼저 생기는 의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괴인 21면상이 놓은 것으로 확인된 독극물 과자를 먹고 사망한 일반 소비자는 없었습니다.

발견된 일부 제품에는 실제로 치명적인 독성이 있는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인들은 독극물을 넣은 일부 제품 겉면에 독이 들어 있어 위험하다는 경고문까지 붙였습니다.

덕분에 제품이 발견돼 회수됐고 실제 소비자가 먹어 숨지는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지금까지도 범행 목적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정말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왜 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표시했을까요.

반대로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면 왜 실제로 치명적인 독극물을 넣었을까요.

정답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범인들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을 넣고 경고문까지 붙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해석은 식품회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입니다.

매장에 독극물 제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비자는 해당 회사의 모든 제품을 불신할 수 있습니다.

실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도 제품 회수와 판매 감소, 브랜드 이미지 추락 등 회사에는 엄청난 피해가 생깁니다.

언론이 사건을 크게 보도할수록 사회적 공포도 커집니다.

괴인 21면상은 이런 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범인들이 직접 밝힌 최종 목적이라고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기업에 대한 원한이었는지, 돈이 목적이었는지, 사회와 경찰을 상대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경찰 앞에 나타난 ‘여우눈의 남자’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는 범인으로 의심되는 유명한 얼굴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이른바 **‘여우눈의 남자’**입니다.

기업과 범인 사이의 현금 전달 작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습니다.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가 특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범인 측의 움직임을 감시하거나 현금을 전달받는 과정에 관여한 핵심 인물일 가능성이 의심됐습니다.

이후 경찰은 몽타주를 공개하고 남성의 신원을 추적했습니다.

그 얼굴은 전국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눈앞에서 봤는데 왜 체포하지 못했을까

여우눈의 남자를 수사관이 목격했는데도 왜 잡지 않았는지는 이 사건을 둘러싼 대표적인 의문입니다.

당시 수사관 입장에서는 그 남성이 실제 범인인지 즉시 확정할 수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성급하게 붙잡으면 그 한 사람만 확보하고 범죄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을 놓칠 수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남성을 계속 감시하면서 범인집단 전체로 연결되는 단서를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추적 과정에서 그를 놓쳤습니다.

이후 다른 현금 전달 작전에서도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나 차량을 추적하다 놓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범인과 매우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지만 그 순간을 체포로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경찰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신중했던 판단과 지역 경찰 사이의 공조 문제 등이 수사 실패의 원인으로 거론됐습니다.

방범카메라에 찍힌 또 다른 인물

여우눈의 남자만 얼굴이 남은 것은 아닙니다.

청산가리가 든 과자가 발견된 점포의 방범카메라에는 수상한 남성 한 명이 찍혔습니다.

이 인물은 흔히 **‘비디오의 남자’**라고 불렸습니다.

경찰은 영상을 공개하며 신원을 추적했습니다.

하지만 이 남성 역시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여우눈의 남자와 비디오의 남자가 동일한 범죄집단에 속했는지,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사건에는 범인으로 의심되는 얼굴까지 남아 있었지만 그 얼굴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습니다.

범인들은 왜 그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을까

괴인 21면상은 숨어 있기만 한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에 돈을 요구하는 협박장뿐 아니라 언론과 경찰에 수많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에는 경찰을 조롱하는 표현도 있었고 자신들의 범행을 과시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범인들은 언론 보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자신들의 편지가 신문과 방송에 공개되면 대중은 다음 범행을 기다리게 됩니다.

수사기관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범죄의 관객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일본의 대표적인 **‘극장형 범죄’**로 불립니다.

범죄가 언론을 통해 하나의 연속극처럼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협박장이 많았다면 범인을 찾기 쉬웠던 것 아닐까

오히려 경찰에는 분석할 자료가 매우 많았습니다.

협박장에 사용된 종이와 문체, 인쇄 방식 등을 조사했습니다.

범인들이 특정 문서 작성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기기의 종류까지 추적했습니다.

수천 대가 판매된 기기의 구매자들을 확인하는 대규모 수사도 벌였습니다.

편지에 나타난 말투와 지역적 표현도 분석했습니다.

그럼에도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연결할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편지는 많았지만 지문이나 신원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방대한 자료가 있었음에도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마지막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범인들은 경찰의 움직임을 어떻게 피했을까

현금 전달 작전이 반복해서 실패하면서 경찰 내부 정보가 범인에게 새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습니다.

경찰 관계자가 범죄에 개입했다는 설, 식품회사 내부자설, 폭력단 관련설 등 수많은 가설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 가운데 공식적으로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당시 경찰 무전은 현재보다 감청 위험이 높았고, 범인들이 현장을 사전에 살피거나 멀리서 경찰 움직임을 관찰했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범인 중 경찰이 있었다”거나 “기업 내부자가 범인이었다”는 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혹까지 수사했지만 범인으로 확정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괴인 21면상은 결국 돈을 받아갔을까

범인들은 여러 기업에 수억 엔 규모의 현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막대한 돈을 챙긴 범죄조직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요 협박 과정에서 범인들이 요구한 거액의 현금을 성공적으로 받아갔다고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경찰이 잠복하면서 현금 전달이 무산되거나 범인이 약속된 장소에 직접 나타나지 않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돈을 받는 것이 최우선 목적이었다면 왜 돈을 확보하지 못하면서도 범행을 계속했을까요.

이 때문에 단순한 금전 목적 이외의 동기가 있었을 가능성이 계속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확인되지 않은 추정입니다.

범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이 사건에서 가장 풀리지 않은 문제입니다.

표면적인 목적은 돈으로 보였습니다.

첫 사건부터 현금 10억 엔과 금괴 100kg을 요구했고 이후 다른 식품회사에도 거액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행동은 단순한 금품 갈취범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돈을 받지 못했는데도 범행을 이어갔습니다.

언론에 도전장을 보내며 스스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독극물을 과자에 넣으면서도 일부 제품에는 위험을 알리는 표시를 붙였습니다.

경찰을 반복해서 도발했습니다.

그래서 기업에 대한 원한, 금전 목적, 주가와 관련된 경제적 목적, 사회적 과시욕 등 여러 이론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확정된 범행 동기는 없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연인원 약 130만 명을 투입하고도 못 잡았다

경찰은 사건 해결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수사를 벌였습니다.

수사에 투입된 경찰관은 연인원 약 130만 명에 달했습니다.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도 약 12만 5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범행 차량과 목격자, 협박장, 독극물, 사용된 기기, 현금 전달 장소 등 가능한 단서들이 대대적으로 조사됐습니다.

일본 경찰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수사였습니다.

그런데도 범인집단의 구성원 한 명조차 기소하지 못했습니다.

숫자가 큰 만큼 이 사건의 미해결은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경찰 간부의 죽음과 사건의 마지막 편지

1985년 8월 7일, 당시 시가현 경찰본부장이었던 야마모토 마사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시가현 경찰은 앞서 하우스식품 협박사건과 관련한 현금 전달 작전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차량을 추적하다 놓친 일이 있었습니다.

사건 수사와 그에 따른 책임 문제가 큰 부담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불과 닷새 뒤인 8월 12일.

괴인 21면상은 언론에 새로운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용은 식품회사에 대한 협박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른바 범행 종료 선언이었습니다.

그 이후 괴인 21면상을 자처하는 집단의 범행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왜 갑자기 범행을 끝냈을까

범행 종료 역시 미스터리입니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범인들이 원하는 목적을 이미 달성했기 때문인지, 조직 내부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범인들이 처음 범행을 시작한 것처럼 마지막도 자신들의 편지로 선언했다는 사실입니다.

약 1년 반 동안 일본 사회를 흔든 뒤 갑자기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범행이 끝났는데 왜 2000년까지 사건이 이어졌을까

1985년에 범행은 사실상 멈췄지만 경찰 수사는 계속됐습니다.

이미 발생한 납치와 협박, 방화, 독극물 관련 살인미수 등의 책임자를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법에는 각 범죄에 공소시효가 존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별 시효가 차례로 끝났습니다.

1994년에는 사건의 시작이었던 에자키 글리코 사장 납치사건의 공소시효가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2000년 2월 13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청산가리 과자 관련 살인미수 사건의 공소시효까지 끝났습니다.

이로써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 포함된 범죄들은 범인을 한 명도 기소하지 못한 채 모두 공소시효를 맞았습니다.

지금 범인이 밝혀지면 처벌할 수 있을까

현재 일본에서는 살인 등 일부 중대범죄의 공소시효 제도가 당시와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미 오래전에 공소시효가 완성된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을 다시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고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효가 완성된 당시 범죄를 새로 기소해 처벌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제 범인의 신원을 밝히는 문제는 형사처벌보다 사건의 진실을 확인한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여우눈의 남자’는 결국 누구였을까

사건 발생 40년이 넘은 지금도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인물은 여우눈의 남자입니다.

수사관이 직접 목격했습니다.

몽타주가 전국에 공개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범죄집단의 지휘자였는지, 현금을 감시하던 실행책이었는지, 범인집단과 어느 정도 관련됐는지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방범카메라에 찍힌 비디오의 남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이 남았는데 사람이 사라진 사건입니다.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왜 아직도 유명할까

이 사건에는 보통의 미제사건과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범인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협박장이 있었습니다.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몽타주가 있었습니다.

방범카메라 영상이 있었습니다.

범행에 사용된 차량과 물품도 추적했습니다.

독극물까지 확보했습니다.

수사 대상자는 약 12만 5천 명에 달했고 경찰은 연인원 약 130만 명을 투입했습니다.

그런데도 범인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범인들은 숨어 있으면서도 언론과 경찰을 계속 자극했고, 자신들이 원하는 시점에 범행 종료까지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단순한 장기 미제사건을 넘어 범죄집단과 경찰이 약 1년 반 동안 공개적으로 맞선 일본의 대표적인 극장형 범죄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결국 무엇이 밝혀졌고 무엇이 남았나

확인된 사실은 분명합니다.

1984년 글리코 사장이 납치됐습니다.

사장은 스스로 탈출했습니다.

범인들은 이후 여러 식품회사를 협박했습니다.

괴인 21면상이라는 이름으로 경찰과 언론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실제로 청산가리가 든 과자가 매장에 놓였습니다.

다행히 해당 독극물 과자를 먹고 숨진 소비자는 없었습니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까지 수사관과 방범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도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1985년 범인들은 갑자기 범행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경찰은 이후에도 장기간 수사를 계속했지만 2000년 모든 관련 사건의 공소시효가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끝내 확인하지 못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괴인 21면상은 누구였는가.

왜 식품회사들을 상대로 이런 범죄를 벌였는가.

범인들이 정말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돈이 목적이었는지, 기업에 대한 원한이었는지, 경찰과 사회를 상대로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은 단서가 부족해서 풀리지 않은 사건이 아닙니다.

범인의 얼굴까지 봤고, 목소리와 글을 추적했고, 엄청난 인력까지 투입했지만 결국 그 모든 단서가 단 한 명의 실명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건입니다.

그것이 사건 발생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사건이 일본을 대표하는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